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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학 사상
    한국사 2024. 3. 24. 14:02

    실학 사상의 발달 배경

    실학은 성리학의 현실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 저하로 성리학의 한계성을 지각하면서 발생하였습니다. 민생안정과 부국강병을 목표로 현실에 비판적이면서 실증적인 논리를 통해 사회 개혁론을 제시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경제가 발달하고 상품 화폐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신분 변동으로 인하여 양반의 계층 분화가 심화되었고 몰락한 양반층이 등장하였습니다.

    실학자들은 이러한 양반과 농민의 생존 문제에 주목하였습니다. 서학의 전래로 서양 과학이 소개되면서 주자학의 결함과 허구성이 확인되었습니다. 고증학이 유포되었으며, 영조와 정조 때 학문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실학 사상의 선구자

    실학 사상의 주도했던 선구자는 이수광, 한백겸, 김육이 있습니다.

    • 이수광은 선조에서 광해군 때의 학자로 세 차례 베이징을 다녀오면서 학문적 시야가 넓어졌으며 서양 문물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지봉유설>에서 천문, 지리, 관제, 곤충 그리고 <천주실의> 등을 소개하였습니다.
    • 한백겸은 선조에서 광해군 때의 학자로 고증학적 연구를 통해 <동국지리지>를 남겨 삼한의 위치를 고증하였습니다.
    • 김육은 인조에서 효종 때의 학자로 대동법 확대를 주장하였고, 주전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수레와 수차 이용을 가져왔으며 아담 샬의 시헌력을 채용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유원총보>, <해동명신록> 등이 있습니다.

     

     

    실학 사상의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중농학파

    실학 사상의 중농학파는 경기 지방 남인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농업 중심의 개혁을 주장하였으며 경세치용학파라고도 불렀습니다. 농민층 입장에서 토지, 조세, 군사, 교육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는데 이 중 가장 중요시한 개혁은 토지 제도 개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유형원, 이익, 정약용이 있습니다.

    • 유형원은 자영농 육성을 위한 토지제도 개혁인 균전제를 주장하고 과거제도와 노비제도를 비판하였으며 <반계수록>을 저술하였습니다.
    • 이익은 매매 가능한 영업전을 설정하고 그 이상의 토지를 매매할 수 없도록 한 한전제를 주장하였습니다. 나라를 좀 먹는 6가지의 병폐 즉 노비, 과거, 문벌제도, 사치와 미신, 승려, 게으름을 지적하고 화폐 폐지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사창제를 실시를 주장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한 근기학파를 형성하였습니다. <성호사설>을 저술하였습니다.
    • 정약용은 노동력을 따라 소득을 분배하는 공동 농장제인 여전제를 주장하였습니다. 과학기술에 관심을 보여 거중기를 만들고 한강에 주교를 주장하고, 상공업 발달과 백성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정치제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저술하였습니다.                                                                                                 

    <목민심서>는 예로부터 지방관의 사적을 수록하여 목민관의 치민에 관한 도리를 논한 책으로 관리의 계몽을 위해 저술한 서적입니다.

    <경세유표>는 중앙정치제도의 폐해를 지적하고 그 개혁의 의견을 기술하였으며 정전제를 제시한 책입니다.

    <흠흠신서>는 형옥에 관한 법률 정치로서, 특히 형옥의 임무를 맡는 관리들이 유의할 사항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으며 조선의 법제 및 사회 연구에 귀중한 문헌입니다.

     

    중상학파

    실학 사상의 중상학파는 서울 지역의 노론을 중심으로 상공업 진흥과 기술 혁신을 주장하였습니다. 청의 발달된 문물을 수입하여 이용후생에 힘쓰자고 북학파가 주장하였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가 있습니다.

    • 유수원은 <우서>를 저술하여 상공업 진흥과 기술 혁신을 강조하였으며 사농공사의 직업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습니다. 농업에서는 토지제도의 개혁보다 농업의 상업적 경영과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 홍대용은 기술 혁신과 부국강병을 근본으로 성리학을 극복할 것을 강조하고, 문벌제도 철폐와 지전설을 주장하였으며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였습니다. <임하경륜>, <의산문답>등을 저술하였습니다.
    • 박지원은 상공업 진흥을 위해 수레와 선박의 이용과 화폐 유통을 강조하였고, 양반 문벌제도의 모순을 비판하였습니다. 영농 방법의 개선, 상업적 농업의 장려와 수리시설의 확충을 주장하였습니다. <열하일기>등을 저술하였습니다.
    • 박제가는 상공업의 발달을 위해 청과의 통상 강화, 수레나 선박의 이용 확대, 소비를 권장하여 생산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북학의>를 저술하였습니다.

     

    실학의 국학 연구로의 확대

    실학의 발달로 인해 민족의 전통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학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국학은 역사, 지리, 언어로 발전하였습니다.

     

    역사

    국학에서 역사 연구는 이익이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역사 서술 방법을 제시하고,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탈피하여 민족에 대해 주체적으로 자각하였습니다.

    • 안정복은 이익의 역사의식을 계승하고 <동사강목>을 저술하였으며, 한국사의 독자적인 정통론을 수립하고 고증사학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 이긍익은 조선 시대의 정치, 문화를 정리하여 <연려실기술>을 저술하였으며 실증적이며 객관적인 역사 서술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 한치윤은 중국과 일본의 자료를 인용하여 <해동역사>를 저술하였으며 민족사 인식의 폭을 확대하였으며 한반도 중심의 역사관을 극복하고 고대사의 시야를 만주가지 확대하였습니다.
    지리

    국학은 지리분야에서는 역사 지리서와 인문 지리서, 지도를 편찬하였습니다.

    역사 지리서는 <동국지리지>, <아방강역고>가 있습니다. 인문 지리서는 <택리지>가 있고, 지도는 <동국지도>, <대동여지도>를 있습니다. 

     

    언어

    국학의 언어 연구는 <훈민정음운해>, <언문지>, <고금석림>를 편찬하였습니다. 백과서적도 편찬하게 되었는데, <지봉유설>, <성호사설>, <청장관전서>, <임원경제지> 등이 있습니다. 

     

    실학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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