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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는 중국으로부터 전해져 왔고 삼국시대에 처음 들어와서 남북조시대를 걸쳐 한국의 민족과 함께 토착화되면서 자리잡은 종교입니다.
한국의 불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불교의 수용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중국 전진의 순도를 통해 공인되었습니다. 백제는 불교를 침류왕 때 중국의 동진에서 수용하였고, 신라는 눌지왕 때 고구려를 거쳐 온 묵호자에 의해 불교가 전파되었으나 널리 확대되지 못하다가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되었습니다.
삼국에 수용된 불교의 성격
삼국에 수용된 불교의 성격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므로 왕실과 귀족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불교는 고대 국가의 정신적 통일에 이바지하였으며, 국가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토착신앙과 결합하여 점차 현세의 고통과 재앙에서 벗어나 복을 비는 수단으로 변하였습니다.
삼국 불교의 특징
고구려의 불교는 초기에는 도교의 무개념으로 불교의 공을 이해하려는 격의불교로 수용하여 불교 교리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방법으로 하였습니다. 6세기 이후 공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삼론종이 크게 발달하였습니다.
백제의 불교는 성왕 때 겸익이 인도에 가서 구법을 하고 돌아와 백제 계율종의 시조가 되었으며, 성왕 때 노리사치계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고 일본 불교의 기초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불교가 신라에서는 왕권에 밀착되어 성행하였으며, 법흥왕에서 진덕여왕 때까지는 불교식 왕명을 사용하여 왕권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호국 불교로써 불교의 국가적 성격이 강화되었습니다.
삼국의 대표적인 불교 유물
삼국의 대표적인 불교 유물로 고구려는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이 있습니다. 금동여래입상은 금동으로 만든 석가의 서 있는 모습으로 연꽃 대좌 위에 올라가 있으며, 배 모양의 광배에 빛이 소용돌이치듯 나가는 것을 묘사하였습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고 어깨가 좁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으며 좌우대칭이 지나친게 특징입니다. 연가7년이라는 명문을 통해 연대를 539년이나 599년으로 추정합니다.
백제는 서산 마애삼존불이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온화한 표정을 한 주존불, 양쪽에는 보살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반가사유상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마애불 형식이 안착한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백제 불교 유물입니다.
신라의 대표적인 불교 유물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습니다. 일본 광륭사의 목조반가사유상과 거의 유사하며 국보 제83호 입니다. 단순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 표현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 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완벽한 주조 기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불교
통일신라의 불교 문화는 이전에 비해 종교적이고 신앙적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정토신앙이 유행하면서 내세적인 불교의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신라 통일기에는 불교의 교리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습니다. 신라 중기에는 교종파가 형성되었으며, 신라말기에는 불교계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서 선종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승려
- 원효 는 <대승기신론소>를 통해 불교 철학의 기준을 확립하였고, 모든 중생이 일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에 화엄학 성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불교 이론을 종합하여 종파의 융합을 시도하는 화쟁사상을 펼쳤으며 인간 평등의 기본 원칙을 제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실천을 중시하였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을 중시하는 정토종을 전파하였고 법성종을 창시하여 당에 유학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경전을 해석하였습니다.
- 의상 은 당에 유학하여 법장과 함께 지엄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귀국하여 신라 화엄종을 창설하였습니다. <화엄일승법계도>는 일즉다 다즉일의 원융사상으로 현상 세계의 모든 대립물은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의상의 사상은 중앙집권적 전제왕권을 뒷받침하였고, 고려 초 균여로 이어지는 의상의 법맥은 신라 화엄종의 주류를 형성하였습니다.
- 원측 은 당에서 유식 불교를 연구하고 당의 서명학파에서 자신의 학설을 강의하였습니다.
- 혜초 는 당에서 인도, 서역 지방까지 순례하여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습니다.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대중화는 7세기 전반 지배층 중심의 불교를 비판하면서 일반민들 사이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왕실에서부터 노비까지 모든 신라인들 사이에서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은 정토종은 경전은 무량수경이고 불상은 아미타불이었습니다. 화엄종의 본찰인 영주 부석사에 무량수전과 아미타불이 있습니다.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진료의 법상종은 점을 쳐서 참회하는 계율적 반성인 점찰법회가 행해졌고 미륵불 사상을 전파하였습니다.
고려의 불교 문화
고려의 불교는 고려 태조 때부터 불교를 장려하면서 불교 행사인 연등회와 팔관회를 중시하였고, 승려들 중 국사와 왕사를 선발하여 사원에 토지와 노비를 주고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주었습니다.
고려 초기의 불교는 균여의 화엄종이 유행하였습니다. 의천은 이전의 교종 5교를 화엄종 중심에서 정리하고 해동 천태종을 창설하였으며, 이론뿐 아니라 실천을 강조하는 천태종을 통해 교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통합하려고 하였습니다. 의천의 사후 교단이 다시 분열되면서 귀족 중심의 불교가 지속되었습니다.
지눌은 조계종을 통해 교선의 온전한 통합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불교의 타락을 비판하고 독경, 수행, 노동을 강조하는 신앙결사운동을 벌였습니다. 돈오점수와 정혜쌍수를 강조하였습니다.
고려의 불상과 사찰
고려의 불상의 특징은 이전에 비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불상을 제작하였는데 각 지방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만 통일신라 때에 비해 조형미나 세련미는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충주 철불좌상,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 북한산 구기리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습니다.
고려의 사찰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성불사 응진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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