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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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한국사 2024. 3. 8. 09:23
1882년 이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삼정의 문란이 여전히 존속하는 가운데, 외국에 대한 배상금 부담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시키는 등의 농민에 대한 수탈이 심화되었습니다. 동학은 제 2대 교주인 최시형의 노력으로 동학의 교세가 확장되었으며 어지러운 시기에 '인내천 사상'과 '외세배척 사상'은 농민들에게 큰 호흥을 얻게 되었습니다. 동학의 교주였던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포교의 자유를 획득하고자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처음에는 종교집회의 성격이 강하였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탐관오리의 숙청과 일본 및 서양 세력의 축출을 주장하는 척왜양창의 모습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시기별로 알아보겠습니다. 1기 고부민란의 시기 동학농민운동의 1기를 고부민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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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개화파와 위정척사파한국사 2024. 3. 5. 23:11
조선 후기 개항 이전의 정세는 대내적으로 일당전제를 거부하고 특정 소수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비정상적인 정치 형태인 세도정치로 인해 사회적 기반이 결여되고 붕당정치의 파탄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세도정치에 따라 정치 기강이 해이해진 틈을 타 통치체제가 문란해지면서 전정, 군정, 환곡의 즉 삼정의 문란에 의한 민생의 파탄으로 민란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왕권 강화책의 필요성이 증대되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서양 세력이 중국과 일본의 문호를 개방시키고 조선으로 몰려오는 상황에서 이양선의 출몰이 잦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 조선 후기개항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와 의미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왕권 강화책과 민생 안정책으로 개혁정치를 펼쳤습니다. 당시 세도정치의 권력의 주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