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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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한국사 2024. 3. 8. 09:23
1882년 이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삼정의 문란이 여전히 존속하는 가운데, 외국에 대한 배상금 부담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시키는 등의 농민에 대한 수탈이 심화되었습니다. 동학은 제 2대 교주인 최시형의 노력으로 동학의 교세가 확장되었으며 어지러운 시기에 '인내천 사상'과 '외세배척 사상'은 농민들에게 큰 호흥을 얻게 되었습니다. 동학의 교주였던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포교의 자유를 획득하고자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처음에는 종교집회의 성격이 강하였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탐관오리의 숙청과 일본 및 서양 세력의 축출을 주장하는 척왜양창의 모습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시기별로 알아보겠습니다. 1기 고부민란의 시기 동학농민운동의 1기를 고부민란의 ..